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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 아래서 ‘10월의 독서산책’


한낮의 따뜻한 햇살이 반가운 요즘, 단풍나무 아래서 읽기 좋은 10월의 추천도서를 소개합니다.

1. [문학] 거기에는 없다│서효인, 현대문학

산문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이 시집의 모든 목차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신도시에서’ ‘기숙사에서’ ‘저수지에서’ ‘아파트에서’처럼. 그리고 시집의 마지막에 서효인 시인은 '거기에서 만난'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덧붙였다.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거기서 만나거나 바라본 인물이기에. 그곳에서 본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을지 모른다. “고모나 삼촌이거나 모르는 아줌마거나 청년이거나 아무쪼록 그 무엇이거나 이름 붙일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그렇지 않으며, 작가의 일이란 바로 그런 인물을 잊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

‘교실에서’라는 시를 읽으면 우리는 어떤 기억을 더듬어 가며 잊었던 마땅한 분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심심하거나 기분이 나쁘거나” 하면 “애들을 곤죽이 되게 때리던” 선생들이 떠올라서. ‘병원에서’라는 시를 읽으면 눈물이 고일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의 기록이므로. 게다가 '거기에서 만난'까지 읽는다면 우리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삶에서 아이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으며 아버지이자 시인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두 발로 딛고 선 죽음을 잊으려” 견디고 살아내려는 의지를.

그러나 이 시집은 감상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시인의 목소리는 체계적이며 이성적으로 들린다. 그 안에서 퍼지는 ‘이것은 사람입니까?’라는 울림은 그래서 더 뜨겁고 생생하다. 또한 “아직 죽지 않아 다행인 거의 모든 삶”에 대해서 쓰겠다는 시인의 뜨거운 마음. 어째서인가, 시인이 언젠가는 이 시집에서 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소설로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이 기대는.

_조경란 위원, 소설가

2. [인문예술] 미끄러지는 말들│백승주, 타인의사유

사회언어학자 백승주 선생의 책은 순수한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언어는 인간의 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관계처럼 울퉁불퉁한 모습을 띠고 있다. 선생은 이 책에서 늘 미끄러지고 유예되는 말들의 의미가 감추고 있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 사회적 관계를 보여주려고 한다. 따라서 선생의 관심은 언어에 대한 아카데믹한 관심에 머물지 않고, 언어와 사회, 역사, 문화, 정치가 맺는 더 포괄적이고 함축적인 관계를 향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우리말이 차별과 혐오, 배제로 기능하는 방식을 고찰하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본다. 이러한 검토는 단일한 국어에 대한 상상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단일한 국어의 상상은 방언 및 방언을 사용하는 이들에 대한 억압으로 기능하기도 하고, 한국어를 제대로 모르는 이주민들을 차별과 재난에 위험하게 노출시키기도 하고, 은어나 신조어를 불순한 것으로 배제하는 기능도 한다.?


선생은 이 사회언어학적 테제를 안타깝고 가슴이 뭉클한 이야기들로 전달하고 있다. 한국어를 모르는 네팔 이주노동자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라면집에서 라면을 시켜먹은 뒤 돈이 없다는 사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무려 6년간이나 정신병동에 갇혀 지내게 된 사연이 그렇다. 가난한 나라의 유색 이주민이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말 그대로 질병으로 치부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1956년 5월 18일 생물 수업을 마친 뒤 비행장 인근 봉우리에 묻힌 형님의 뼈를 찾아가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수많은 뼈들의 무덤을 헤매다가 아무 뼈나 들고 가서 형님의 묘역에 묻게 되는 한 제주민의 일기는 ‘속솜허라’(조용히 해라)는 제주 방언에 담긴 학살의?기억을 담담하게 전해준다.?


에필로그에서 선생은 첫 번째 직장에서 대다수 여성 동료들이 나누던 자매들의 언어가 어떻게 연대와 돌봄의 언어로 기능했는지 환기하고 있다. 그것은 합리, 효율, 경쟁력이라는 이름들 아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남자의 언어에 대한 성찰을 표현하는 맺음말이다.


_진태원 위원, 성공회대 연구교수

3. [사회과학] 라디오 연극 키네마│이상길, 이음

오늘날 한국의 대중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화려한 무대 뒤에는 세계 무대에 내놓아 손색없는 문화 상품을 기획하는 문화기획자들이 있다. 1920-30년대 일제 강점기에 경성을 중심으로 서구적 대중문화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작가이자 라디오 피디로 일하면서 연극, 영화, 음반, 무용 등 다방면의 공연 예술을 기획했던 모던 보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최승일. 1930년대 도쿄에서 시작하여 베이징, 상하이, 뉴욕, 파리, 헤이그,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며 한국 무용을 널리 알렸던 무용가 최승희의 오빠다. 최승희가 세계적인 무용가가 되는 과정에도 그의 기획력이 작용했다.?


이 책은 식민지 시대 문화기획자 최승일이 조선의 예술과 문화를 어떻게 하면 세계화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고민하면서 다방면에서 대중적 문화 상품을 기획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때 세계화란 조선예술을 세계에 알리고 인정받는 것을 뜻하는데, 최승일은 우리의 삶과 문화를 기반으로 해서만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미나리’나 ‘오징어게임’ 등 보편적이면서도 한국인의 삶과 정서가 담긴 영화가 세계적 열광을 불러일으킬 것을 내다본듯이.?


저자는 최승일의 일대기를 통해 1940년대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와 1950년대 초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식민지 시대 일본에 유학했던 근대적 지식인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실감 나게 추적한다. 그래서 이 책은 근대적 대중문화의 출현에 관한 이야기면서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전형적 지식인이 걸었던 행로에 대한 분석이기도 하다. 책의 부록으로 덧붙여진 ‘최승일 산문집’은 그가 남긴 근대 미디어 문화에 대한 글 24편을 찾아내어 현대어로 옮겨놓은 것으로 그의 생생한 삶과 생각을 직접 접할 수 있게 해준다.

_정수복 위원, 사회학자/작가

4. [자연과학]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이종필, 사계절

이 책은 물리학자가 쓴 과학적인 태도란 무엇인가에 관한 책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쉽고 편안하게, 그러나 결코 단순하지 않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과학은 어렵다. 우리에게 과학이 어려운 것은 과학이 우리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 관한 지식체계이다… 우주의 언어는 인간에게 아주 낯설다.” “남의 말을 쉽게 믿지 않고 항상 스스로 확인하는 자세를 가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과학의 출발이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나의 시각, 나의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정보를 얻는 과정이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제반 환경에 대한 통찰을 얻는 첫걸음이다.” 이 책은 이러한 멋진 잠언들로 가득하다.?


이렇듯 과학은 항상 묻고 따져보고 엄밀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려는, 진리 앞에서 겸손해지고, 진리 역시 잠정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련의 태도이다. 과학이란 무슨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우리가 과학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조근조근 전해준다.


_권복규 위원, 이화여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5. [실용일반] 탈서울 지망생입니다│김미향, 한겨레출판사

부제목 '‘나만의 온탕’ 같은 안락한 소도시를 선택한 새내기 지방러 14명의 조언'. ‘탈서울’을 생각하면서도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탈서울 (미리) 체험기 및 Q&A 인터뷰가 담긴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서울을 벗어난 삶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그리거나 하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탈서울’ 생각을 접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떠나기 전 세 가지를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네요. 1.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돈벌이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제일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돈을 벌어 살고 싶은지 생각해볼 것. 2. 각종 문화생활을 누릴 수 없더라도 괜찮은지 생각해볼 것. 3. 직업의 기회가 더 적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할 것.”

신문 기자인 저자가 인터뷰하고 취재해서 쓴 책이기에 현장감이 느껴지고 비교적 쉽고 빠르게 읽힌다. 독자들을 대신하여 궁금한 점을 풀어주는 느낌이다. “탈서울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추진한 분들은 뭔가 자신만의 장기가 있는 분들이었다. 시장에 당장 내다 팔 것이 없는 평범한 사무직 근로자가 급여소득자로 살기 위해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현실을 나는 인터뷰 과정에서 재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부제목에 왜 ‘나만의 온탕’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가 “열탕 같은 대도시의 좁아터진 삶, 냉탕 같은 사회 기반 부족한 삶” 둘 중에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둘다 싫어요, 38도 온탕은 없나요?”라고 되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온탕은 “중간 규모 도시에서 적절한 공간과 인프라를 누리며 쾌적하게 사는 삶”이 되겠다.

“로컬에 산다고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직장과 학교가 필요하며, 대중교통과 생활 시설, 동네에 적당한 생필품 구매처는 있어야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나는 집 앞에서 배추 뜯어 전 부쳐 먹는 영화 속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가 아니니까. 서울을 벗어나더라도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조금은 많았으면 좋겠는데. 역시나 지옥철을 견디든가, 아니면 농사를 짓든가. 우리에게 놓인 선택지는 열탕, 아니면 냉탕뿐이었다”

설령 ‘탈서울’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자신의 삶을 곰곰이 되살펴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_표정훈 위원, 평론가

6. [그림책/동화] 나는 안내견이야│표영민 저/조원희 그림, 한울림스페셜

안내견의 눈으로 보고 느낀, 낯설고 고단한 하루를 담은 그림책이다.

안내견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처음으로 시각장애인과 산책에 나선 안내견. 책을 펼치면 “드디어 시작!”이라고 외친다.

“이제부터 언니는 나의 보호자”
“나는 언니의 보호자에요”

이 말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를 아끼는 사이가 되겠다는 안내견의 마음 때문이다. 안내견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하겠다”고, “나 잘할 수 있겠죠?”라고 말한다.

그렇게 나선 산책 첫날. 당연히 모든 것이 쉽지 않다. 세상은 시끄럽고, 사람들은 언니와 자신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작은 반려견이 쫓아와 왈왈 짖기도 하고, 사람들은 귀엽다고 사진을 찍는가 하면 어떤 꼬마는 무섭다고 울음을 터뜨린다. 안내견인 줄 모르고 커다란 개가 입마개를 하지 않고 다닌다고 신고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안내견은 어떤 순간에도 한 눈 팔지 않고, 길에만 집중한다. 자신의 발걸음이 언니의 눈이라면서.

안내견의 눈으로 전한 하루에는 우리가 장애인을 보는 편견과 무지가 담겨 있다.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하지만, 그림책은 전혀 상투적이지 않다.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이는 조원희 작가의 힘 있으면서도 다정하고 따뜻한 그림 때문이다. 두 개의 점으로 표현된 안내견의 눈이 얼마나 착하고 다정한지 모른다. 따뜻한 그림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짧고 간결한 텍스트와 어울려 우리 마음을 조용히 울린다.

쉽지 않은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안내견은 말한다.
“언니도 오늘 많이 힘들었죠. 그래도 난 언니와 함께 걸어서 좋았어요. 우리 내일도 산책해요.”
우리 모두에게 언니와 반려견의 마음이 되어보게 하는 그림책.
감동의 깊이가 결코 얕지 않다.

_최현미 위원, 문화일보 문화부장

7. [청소년] 교실 영화관으로 초대합니다│인문학동아리 ‘귀를 기울이면’, 호밀밭

2019년,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고, '미나리'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오징어 게임'은 에미상 6개 부문을 휩쓸었다. BTS와 블랙 핑크 등 K-POP에 이어 최근 몇 년간 한국 대중문화가 이룬 성취는 눈부시다.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문화 콘텐츠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한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과 탁월한 상상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야흐로 미래는 크리에이터의 시대다.

디지털과 미디어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영화는 단순한 취미와 오락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중요한 매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학교 교실도 예외가 아니다. 동래여중 인문학 동아리 ‘귀를 기울이면’에 모인 스물일곱 명의 학생들이 영화에 몰입한 결과물을 책으로 엮었다. 영화는 단 네 편에 불과하지만 각각의 주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애니메이션 '레드 슈즈'는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창 외모에 신경 쓸 10대들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현실을 살핀다. 현대인의 고립과 소통을 다룬 '김씨 표루기'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정서적 교류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투모로우'의 스펙터클한 이미지는 지구 환경의 중요성과 기성세대의 탐욕을 점검하고,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 경쟁과 성공에 몰입한 현실에서 삶의 가치를 돌아본다.

한 편의 영화는 텍스트로 얻을 수 없는 감동과 교훈의 메시지를 오감을 통해 전한다. 이 책에는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창의적 상상력을 기르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관람 에티켓, 교실 영화관, 영화를 즐기는 방법, 쿠키 영상 등 책의 구성 자체가 영화를 보는 과정을 담았다. 중학생들의 이야기가 조금은 어설프고 엉성하지만, 그들의 고민과 생각의 깊이는 기성세대와 크게 차이가 없다. 현실을 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며 타인과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운 결과물에 박수를 보낼 만하다.

청소년들은 단순히 가르침의 대상이 아니며 미성숙한 존재도 아니다. ‘교실 영화관’은 자유롭게 상상하고 즐겁게 고민하며 미래를 꿈꾸는 공간이다.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 흐뭇하다. 이렇게 교과서에서 벗어나 온몸으로 부딪치며 세상을 읽고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 책은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이뤄낸 성취의 기록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_류대성 위원, 『읽기의 미래』 저자

이 중에 당신의 마음을 울리는 책 한 권이 있기를 바라며!
다음 달에도 풍성한 책 추천과 함께 돌아올게요!

[보도자료출처: 정책브리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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